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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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둔 어느 날, 학생들에게 숙제를 조금 내줄 의도로,
“이번 숙제는 음… 각자 알아서 해와요”
이렇게 말하면 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숙제를 조금 해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밝은 표정으로 교실을 떠나는 학생들 중에서 한 학생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 A야, 왜 그래? 무슨 할 말 있니?
  • 아… 그런데요 선생님, 그냥 숙제 정해주시면 안 돼요?
  • 아! 정말? 선생님이 정해줬으면 좋겠어?
  • 네!
  • 그래, 그럼 음… 너는 평소처럼 여기까지 해와!

보통 그러면, 자신의 뱉은 말을 후회하면서, “아니요 아니요, 그냥 제가 알아서 해 올게요”라고 하며 도망치기 마련인데, A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네!”라고 하면서 교실을 나갔습니다.

나중에 이 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썩 잘 어울리는 직업을 골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짜인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나씩 하나씩 묵묵히 잘 해냈을 때 만족감을 얻는 아이.

A와는 반대로,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던 B는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아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오라는 숙제를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해와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시험대비 기간 동안에는 스스로 자습실에서 공부하다가 질문이 생기면 그때 저에게 와서 도움을 구하는 그런 공부법을 좋아했었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잔소리가 필요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B 학생이 어느 날 A와 함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고 말했을 때 저는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정도의 준비 끝에 A, B는 둘 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후, 또 1년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A와 B에게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A에게서는 예상대로 아주 만족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B는 어두운 얼굴로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1년 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적성에도 안 맞고 울면서 잠든 날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고, 이러다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결국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사업자 등록을 하고 1인 창업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 잘 어울리네
  • 그래요? 그래 보이나요?
  • 응, 너는 너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처리할 때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은데 맞아?
  • 어! 선생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 넌 몰랐어?
  • 네, 저는 몰랐어요. 공무원 돼서 첫날부터 아니 연수 받을 때부터 저랑 안 맞는다는 걸 느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 너는 학생 때부터 그랬어. 너도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
  • 나는 진로 상담 그런 쪽으로 전문가는 아니잖아. 내가 섣불리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얘기해줄걸 그랬나?
  • 아니에요.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최소한 제가 그런 일에는 안 맞는다는 걸 알았잖아요. 후회하지 않아요. 시간 낭비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최선을 다했고 원하는 목표를 이뤄 봤으니 그거면 됐어요. 지금 다른 일에 즐겁게 도전하는 중이에요.
  • 맞아,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사람이야. 경험으로 얻은 통찰을 이용해서 다른 길을 찾아. 아주 멋져.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각자의 길은 다르며,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A와 B, 두 학생은 우리에게 자신의 적성과 열정을 따라가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때로는 그 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일에 가장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